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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그만둔 10대 50명, 여기서 찾았습니다

pulmaemi 2012. 12. 9. 05:29

[여럿이 함께 하는 착한경제 ①] 학교 밖에서 공교육 고민하는 '공간민들레'

 

"침대 대신 좁은 책걸상 하나씩만 내주는 싸구려 숙박업소"로 전락한 학교,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학교폭력... 여러 측면에서 학교는 '좌절의 공간'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꾸준히 새로운 교육을 모색하는 이들이 있다. 출판사로 시작해 대안교육공간으로 영역을 넓히며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추구하는 '민들레'가 바로 그들이다. '민들레'가 꿈꾸는 새로운 교육은 무엇이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을까.

지난 11월 19일 오후 민들레출판사 김경옥 주간을 만났다. 1998년 '민들레'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활동, 미래의 계획 등에 관한 이야길 나눴다.

 '공간민들레'의 모습.
ⓒ 김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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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넘어서>가 민들레의 시작"

'민들레'의 시작은 새로운 교육운동의 모색과 맞닿아 있다. 1990년대 교육운동은 주로 학교를 어떻게 바람직한 곳으로 만들지를 고민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한국 사회에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학교도 거기서 자유롭지 못했다. 경쟁과 서열화 등이 더욱 심해졌다. 결국 새로운 교육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도 생겼다. 현병호 격월간 <민들레> 발행인도 그 중 한 명이다. 당시 그의 눈앞에 한 권의 책이 나타났다.

"현병호씨가 당시 보리출판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이한이라는 젊은 필자가 원고뭉치를 들고 찾아왔어요. 학교 시스템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내용의 원고였죠. 그 책을 읽고 우리교육을 위해 꼭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해서 출판하려고 했는데, 보리출판사에서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현병호씨가 <학교를 넘어서>를 내기 위해 출판사를 만들었죠."

1998년 8월, 문제의 책 <학교를 넘어서>가 출간됐다.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당장 김경옥 주간부터 <학교를 넘어서>를 읽고 민들레 출판사에 합류했다.

"저도 교사생활을 하면서 학교 교육에 문제의식이 있었는데, 책을 보면서 느낀 게 많았어요. 교사 생활이 왜 힘든가, 그런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은 기분이었죠. 그래서 이곳을 찾아 '같이 일하고 싶다'고 해서 민들레출판사에 들어왔어요. 저 말고도 여러 사람이 <학교를 넘어서>를 읽고 모였고, 이 책이 던진 화두를 좀 더 지속적으로 고민하기 위해 격월간 <민들레>를 만들었어요."

책을 읽고 민들레출판사에 모인 사람 중에는 탈학교 청소년도 있었다. 학교 밖에서 길을 찾던 이들이 모이면서 민들레 출판사는 대안교육공간 '공간민들레'로 확장됐다. 3년째 '공간민들레'에서 길잡이(상근 교사)로 일하는 김유라씨의 말이다.

"탈학교 청소년들이 모여서 스스로 학교를 왜 나왔는지 이야기 하고, 소모임도 만들었어요. 그 때를 '사랑방 시절'이라고 불러요. 그러다 대안초등학교 출신, 학교에서 적응 못 하는 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면서 배움의 요구가 생겨났죠. 당시만 해도 서울에 이런 학생들이 갈 공간이 별로 없었고, 이곳에서 배우고 성장하고 싶다는 요구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2007년에 '공간민들레'라는 이름으로 1년 단위의 '뿌리와 홀씨' 수업 과정을 개설하게 됐어요.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는 거죠."

'공간민들레'에는 14~18세의 아이들이 모여 있다. 아이들은 다시 '학습 회원'과 '열린 회원'으로 나뉜다. 학습 회원에게는 기초 수업을 수강하고, 자치회의에 참여해야 할 의무가 부과된다. 자치회의는 수업과 소모임 활동 등 공간민들레의 전반적인 운영을 논의하는 자리다.

"민들레는 징검다리다"

 서울 노원구 하계2동 경춘선 폐선 구간에서 하교길에 오른 중학생들이 철로위를 걸으며 귀가하고 있다.(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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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열린 회원에게는 의무가 없고, 자유롭게 듣고 싶은 수업과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학습 회원 30여 명, 열린 회원 20여 명, 총 50명 가량의 학생들이 '공간민들레'를 드나든다. 전체 수업은 1년 과정으로 구성되지만, 학기별로 인원을 모집하기 때문에 한 학기만 듣는 학생들도 있다.

수업은 다시 필수로 들어야 하는 기초 수업과 선택 수업으로 나뉜다. 기초 수업은 우리말, 수, 공동체 수업 세 가지다. 선택 수업에는 일상을 인문학적으로 고찰하는 '일상을 읽는다', 현대사회의 이슈를 토론하는 '세상은 지금' 등 다양한 과목이 있다. 선택 수업에는 학생들의 의견도 반영된다. 일례로 4학기 째를 맞는 심리학 수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수업이다.

재정은 서울시대안교육센터 등 외부의 지원과 학생들의 회비로 운영된다. 열린 회원은 2만 원, 학습 회원은 20~23만 원의 월 회비를 낸다. 학습 회원의 회비가 각각 다른 것은 선택한 수업에 따라 회비가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공간민들레'에는 상근 교사 5명과 대표 1명, 강사 5~6명이 일하고 있다.

공간민들레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만족도는 높다. 3월부터 민들레에 왔다는 서다인(18)군은 "느낌이 좋았다"고 말했다.

"처음에 교사랑 상담을 하는데 느낌이 좋았어요. 학교를 그만 둔 상태였는데 여기서 방향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민들레는 공부만 하라고 강요하지 않으니까, 제가 하고 싶은 요리도 배우고, 자유롭게 듣고 싶은 것도 듣을 수 있어요."

부모의 권유로 민들레를 찾았다는 설원석(14)군 역시 "내년에도 계속 다닐 생각"이라며 만족감을 보였다.

"학교는 선생님이 다 해주는데, 여기는 스스로 하는 게 많아요. 특히 '말과 글' 수업이 좋아요. 주로 철학책을 읽는데 재미도 있고, 배우는 것도 많아요."

수업 외의 소모임 활동도 활발하다. 교사 김유라씨는 소모임에 많은 자부심을 나타냈다.

"공간민들레의 시작은 소모임이에요. 초창기에 온 아이들이 여러 소모임을 만들었고, 그게 지금도 이어져서 소모임 활동이 활발한 편이에요. 지금은 일어, 영어 등 언어에 관련된 소모임과 글쓰는 소모임, 영화 보는 소모임 등이 활동 중이에요."

공간민들레 대표이기도 한 김경옥 주간은, 공간민들레와 대안학교와의 차이를 징검다리에 비유했다.

"대안학교는 징검다리를 거쳐서 가는 목적지예요. 그 안에서 A에서 Z까지 어떤 완결성을 갖고 공부를 하는 곳이죠. 반면에 공간민들레는 배우는 과정에서 자기를 돌아보고 점검하면서 진로를 생각하는, 징검다리 같은 곳이에요. 징검다리니까 좀 쉬기도 하고, 인문학 학습처럼 못 해봤던 것을 하기도 하죠."

그러나 사춘기에 있는 청소년들은 그 징검다리를 건너는 동안 놀랍게 변하고 성장한다. 김 주간이 기억하는 한 제자도 그랬다.

"만화를 그리고 싶어서 학교를 나온 굉장히 '마초'인 친구가 있었어요. '남자는 군대를 가야지' '남자가 어떻게 설거지를 해'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논란을 만드는 친구였죠. 그런데 다른 누군가가 '군대를 가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하면서 토론이 시작됐죠. 그런 토론을 통해서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인 사회적 통념을 다시 생각하고 깨지기도 하잖아요. 그 친구도 그 과정에서 공부를 많이 했어요. 결국 훗날 병역거부를 하고, 지금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등의 평화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 친구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교육=학교' 신앙 깨는 데 15년 걸렸다"

 '공간민들레'에는 아이들을 위한 책이 가득하다.
ⓒ 김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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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민들레출판사가 낸 책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 주간은 바로 몇 권의 책을 이야기했다.

"일단 <학교를 넘어서>가 있죠. 한국사회의 탈학교 담론을 생성시키고 확산시키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어요. '교육=학교'라는 교육의 기존 패러다임을 바꾸는데 큰 역할을 한 책이 <학교를 넘어서>라면, 경쟁의식과 같은 기존 교육 담론을 깬 책이 <교육 통념 깨기>고요. 아이들을 보는 관점, 인간의 성장이나 발달을 보는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낸 책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이란 책이에요. '가만히 있지 않고 오히려 움직여야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가만히 있지 못하는 걸 문제 삼는 사회가 문제다'라는 걸 그 책에 담고 싶었어요. 물론 격월간으로 내는 대안교육잡지 <민들레>도 빼놓을 수 없죠."

민들레가 출판사로, 또 대안교육공간으로 교육운동을 해온 지 벌써 15년이다. 김 주간은 지난 시간의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저희가 말하고 싶었던 건 대안적인 교육이었는데, 그 사례를 찾다 보니 대안학교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게 저희의 '공'이자 '과'인 듯해요. 학교 밖의 교육을 상상하게 만든 것, 다른 교육의 현장도 가능하다는 말을 한 건 '공'이지만, 그 대안으로 대안학교만 사고하게 한 건 '과'인 듯해요. 

저희는 교육의 대안을 모색하는데, 그 종착점은 공교육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대안학교는 상당히 많은 비용이 들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차별과 소외감, 열등감을 주거든요. 그래서 학교를 바꾸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 주간은 이어 "'학교=교육'이라는 신앙을 깨는데 15년이 걸렸다"며 "이제야 공교육 정상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과거에는 공교육 정상화를 이야기하기 어려웠어요. '학교=교육'이라는 신앙이 있었거든요. 사람들에게 학교가 아닌 다른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학교라는 벽을 부수는 역할이 필요했어요. 지금은 그 '학교=교육'이라는 통념이 깨졌기 때문에 공교육 정상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민들레출판사는 앞으로도 공교육 정상화와 관련된 활동에 힘을 쏟을 예정이다. 특히 올해 낸 <스승은 있다> <교사를 춤추게 하라>에 이어 우치다 타츠루의 책을 또 만들 계획이다. 김 주간은 "학교 문제는 사회의 문제이기도 한데, 그는 사회라는 맥락 속에서 학교를 읽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며 "특히 교육의 시장화를 잘 지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의 경험을 공교육에 흘려보내고 싶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민들레 출판사 김경옥 주간.
ⓒ 김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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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민들레 역시 지금까지의 경험을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쓸 계획이다.

"공간민들레에서 아이들을 만난 경험을 잘 정리해 사회와 나누고 싶어요. 지금도 '길 위에서 길을 찾다'는 진로 탐색 프로젝트를 일반 인문계 학교와 함께 하고 있는데요. 우리가 했던 경험을 공교육에 흘려보내 학교에 영향을 주고 싶어요."

대안적인 교육공간을 만드는데 만족하지 않고 한국교육 전체의 변화를 모색하기 때문일까. 김 주간은 교육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발상의 전환을 주문했다.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낼지, 대안학교가 어떤 곳인지 고민하기에 앞서, 우리 교육이 어떻게 변해야 할지를 고민하면 좋겠어요."